가요계의 두 얼굴, 제작자의 철학과 진화하는 아티스트의 세계

가요계의 두 얼굴, 제작자의 철학과 진화하는 아티스트의 세계

대한민국 가요계는 끊임없는 재능의 발굴과 아티스트의 진화로 지탱된다. 무대 뒤에서 스타를 빚어내는 제작자의 치열한 삶과, 그 토대 위에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글로벌 스타의 행보는 서로 다른 듯하지만 ‘본능’과 ‘철학’이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되어 있다. 매니저 출신 작곡가 윤명선이 설파하는 가요계의 생리와, 이를 증명하듯 독보적인 스타일로 성장한 방탄소년단(BTS) 제이홉의 사례를 통해 K-팝 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해 본다.

‘투 잡스’의 신화, 매니저에서 히트 작곡가로

가요계에는 매니저와 작곡가라는 이질적인 두 영역을 동시에 소화하는 이른바 ‘투 잡스(Two Jobs)족’이 존재한다. 코요태와 타이푼의 곡을 쓴 트라이팩타의 박성진 실장과 더불어, 장윤정의 ‘어머나’, 이승철의 ‘서쪽 하늘’, 이루의 ‘까만 안경’ 등을 탄생시킨 제리엔터테인먼트의 윤명선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특히 윤 대표는 해군홍보단원을 시작으로 가수 매니저, 작곡가, 아트 매니저를 거쳐 음반 제작자로 거듭나며 가요계에서 스타 못지않은 입지를 다졌다.

경기대 행정학과 출신인 윤 대표는 해군홍보단 시절 김건모, 김용만 등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이주원, 장동건, 박진영 등의 매니저로 활약했다. 업계에서 그의 별명이 ‘경옥고’로 통했던 일화는 전설적이다. 방송사 자판기 음료가 건강에 해롭다고 판단한 그는 시중의 모든 음료를 시음한 끝에 한방 음료인 경옥고를 선택했고, 1년간 매일 새벽부터 방송사를 돌며 PD들에게 이를 건넸다. 당시 사이다가 300원일 때 1,100원이나 하던 고가의 음료를 돌리며 차에서 쪽잠을 잤던 그의 열정은 단순한 영업이 아닌 생존을 건 투쟁이었다.

동물적인 감각과 인문학적 철학의 결합

윤 대표는 매니지먼트의 본질을 ‘동물적인 감각’과 ‘맹수 같은 체력’으로 정의한다. 학력이나 이론보다는 가수의 감정 변화를 본능적으로 포착하고, 그들이 문화적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진정한 매니지먼트라는 지론이다. 그러나 작곡가로서의 그는 철저히 심리학과 철학에 기반을 둔다.

가수 김사랑의 음반 제작 실패 후 본격적으로 작곡에 뛰어든 그는 심수봉의 ‘진실 그 사랑’을 시작으로 트로트, 댄스, 발라드를 넘나드는 히트곡을 쏟아냈다. 그는 음악과 미술을 ‘고난도의 심리학’으로 간주하며, 홍대 앞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칼 융과 프로이트를 탐독했다.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심리적인 접근을 시도했던 그의 고민이 가장 적중한 사례가 바로 국민 가요 ‘어머나’였다. 인간 본능의 상징성을 담은 감탄사 하나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는 슈퍼주니어-T의 ‘로꾸거’ 작업과 신인 가수 마골피 제작 등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가수는 단순한 스타가 아닌, 넓은 대지 안에 수많은 자연물이 조화를 이루는 ‘에버랜드’ 같은 다중성을 지닌 인물이다.

무대 위의 철학자, 제이홉의 ‘호비코어’ 진화론

윤명선과 같은 제작자들이 본능과 철학을 겸비한 아티스트를 갈망했다면, 현대의 K-팝 씬(Scene)에서 그 이상향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인물은 방탄소년단의 제이홉이다. 2월 18일 생일을 맞이하는 제이홉은 단순한 아이돌을 넘어 패션과 음악을 결합한 독창적인 예술가로 거듭났다. 그의 스타일 변천사는 단순한 의상의 변화가 아닌, 내면의 성장과 아티스트로서의 통제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제이홉의 패션은 ‘호비코어(Hobicore)’라는 고유명사로 불린다. 초기 키치(Kitsch)하고 장난기 넘치는 스타일에서 출발한 그는 이제 거친 스트리트웨어와 정교한 디자이너 작품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글로벌 아이콘이 되었다. 이는 전략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다듬어진 본능에 가깝다.

붉은 가죽과 빈티지의 미학, 글로벌 무대를 장악하다

그의 스타일 진화는 최근 행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2025년 ‘호프 온 더 스테이지(Hope on the Stage)’ 월드 투어의 중심에는 한국 디자이너 김준태(Juntae Kim)가 제작한 붉은 가죽 재킷 셋업이 있었다. 열정과 힘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아방가르드한 펑크 미학은 제이홉을 단순한 퍼포머가 아닌 문화 사절단으로 격상시켰다. 이는 한국의 재능을 세계에 알리려는 그의 의지가 담긴 선택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니고(Nigo)의 ‘휴먼 메이드(Human Made)’와의 협업을 통해 레트로 아메리카나 스타일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퀼팅 봄버 재킷과 헐렁한 데님을 매치한 모습은 그가 지향하는 자유분방함의 정점이었다. 반면, 2025년 베를린 롤라팔루자 무대에서는 아이돌의 전유물인 스팽글을 벗어던지고 낡은 빈티지 가죽 재킷과 블랙 탱크톱을 선택했다. 거친 록스타의 에너지를 뿜어낸 이 스타일링은 그가 솔로 뮤지션으로서 얼마나 깊이 있는 변신을 꾀했는지를 증명한다.

제작자 윤명선이 강조했던 ‘대중을 설득하는 심리적 접근’과 ‘다중적인 매력’은 제이홉이라는 아티스트를 통해 2020년대의 새로운 방식으로 발현되고 있다. 무대 뒤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제작자의 철학이 있었기에, 무대 위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제이홉과 같은 아티스트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K-팝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화 현상임을 보여준다.

조예지 (Jo Ye-ji)